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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좌영희 아델라)
첨부 작성일 2018-11-08 조회 264

가작 : 좌영희 아델라(대구대교구, 불로성당)

 

나뭇가지인 나의 의미

- 불꽃이 향기가 되어 2를 읽고 -   

 

  무신론자였다. 한창 자기 고집이 강했던 대학시절까지는. 그 대학시절에 내 생애 큰바위 얼굴과도 같았던 엄마를 홀연히 떠나보냈다. 식물인간인 엄마를 앰뷸런스에 태우고 배로 고향인 제주도까지 갔다. 그곳 선산에 묻기 위해서였다. 모든 연명 의료기기를 떼어내자는 집안 어르신들의 결정에 그저 눈물만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풍경이 벌어졌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사람들은 웃으면서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까지는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네 살 때 고향을 떠나 육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방학때 오빠, 언니랑 함께 고향을 잠시 방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음 간 고향이 내게 너무나 낯설었고 야속했었다. 그리고 골방에 틀어 박혀 지내며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하던 찰나에 선택한 직업은 나에게 큰바위 얼굴을 잠시나마 가슴속에 묻어두도록 하기에 적합했다.

  11종교라는 의무적인 직장생활에서 그나마 친숙했던 법당에 나가 둥글게 살아가라는 원행심이라는 법명까지 받았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늘 가슴 깊이 텅 비어있는 느낌을 달래고자 여유 있을 때 마다 산을 탔고 볕 좋은 산사 마루에 앉아 풍경소리, 목탁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 왔다. 그러나 법당을 방문해 108배를 올리며 기도한 적은 없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10년이 지난 해,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해, 법명을 받은 지 10년이 되는 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직책 때문에 내게 주어진 애도시간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또 일에 얽매였지만 슬픔을 제대로 토해내지 못했던지 일하면서 소리 없이 흘러 내렸던 눈물을 수도 없이 닦았다. 이때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몰랐다.

 그렇게 삶에 지쳤을 무렵 남편을 만나 아파트 옆에 시할머니가 다니던 성당에 우연히 함께 나갔는데 그 분위기에 압도 되어 통신교리로 어렵게 세례를 받고 한 날 한 시에 세례성사와 성체성사, 혼인성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부부의 인연도 2년이 채 안되어 막을 내렸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에 나또한 나의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모님의 끈질긴 사랑과 본당신부님의 배려로 거행된 부활대축일 새벽 장례미사를 시작으로 두 달도 채 안되어 시종일관 눈물 속에 견진성사까지 받으면서 하느님께 울부짖을 수 있게 되었다. “, 지금,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바로 피정을 들어갔다. 홀로 피정을 오겠다는 나를 이상하게 여긴 한 수녀원에서는 사전 면담까지 하며 받아줬다. 그리고 피정 중에 한 수녀님이 내게 얘기했다. “혹시, 남편이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그때당시 당연히 나는 울면서 나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을 남겨주고 가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선물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래서 다시 성모발현지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처음엔 직장생활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여행했던 곳들도 있어서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떼제베 안에서 순례팀의 지도신부님과 우연히 면담성사를 본 후로는 모든 것이 새로워 졌다. 나의 모든 고백을 들은 지도신부님은 내게 이런 얘기를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이끄심이다. 지금 가장 슬퍼하는 자를 위로해 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이전에 의미 없이 외우기도 했던 주님의 기도는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가 되었고, 묵주기도를 왜 할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게 되었다. 이 성모발현지 성지순례를 계기로 성인들에 대한 전기를 탐독하게 되고 영성 서적을 손에 놓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지를 찾아 또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 까지 이 신앙을 그대로 물려준 순교자들의 신앙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것은 바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신앙인으로서 나의 고향을 다시 찾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다른 친척들의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이다. 용수 공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집에서 나는 태어났고 초등학교 방학 때 나는 사촌들이랑 용수공소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그때 분도, 방지거라는 이름을 듣기는 했었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었다. 할머니는 강 마리아로 천주교 신자셨고 작은고모네 가족은 모두 열심한 신자들이시다.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웃으면서 음식을 장만하던 분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많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눈물로만 슬퍼하기에 급급했던 무신론자인 나와는 달리 그들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그렇게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삶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그들이 세례를 받았는지 아니면 세례를 받고자 했었는지.... 하지만 그들의 생전 삶을 통해 봤을 때 그들의 삶은 고귀했고 비록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할지라고 그리스도인답게 살다 가신 분들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록 찢어지게 가난한 삶이었다 하지라도 그들이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였을 때, 법명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몰랐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선물을 통해 알게 된 하느님의 존재를 통해 나는 서툴지만 기도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비록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의 심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하더라도 나를 이끄시는 분이 진정 내 옆에 있음을 믿기에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연옥영혼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끊임없이 기도한다.

  불꽃이 향기가 되어 2’에 나오는 평신도 다섯 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낯익은 지명과 사람들이 나올 때 마다 아직까지도 그들이 나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운의 이중섭과 친했던 구상 세례자 요한처럼 나또한 무엇이 그리스도인다운 길인지 늘 자문한다.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는 모두 되돌려 줘야 할 것들인데. 한국 천주교회사에 평생을 바친 김구정 이냐시오가 없었다면 제주도 용수에 표착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한국에 레지오의 초석을 다진 김긍룡 가이오가 없었다면 가난했던 그 시절에 어떻게 서로 위로하고 나누며 견딜 수가 있었겠는가 싶다. 성모병원의 기초를 다진 박병래 요셉이 없었다면 삭막한 일반 대형병원에서는 엿볼 수 없는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의 남편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양한모 아우구스티노가 없었다면 너무 이른 나이에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겪은 내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영성서적도 읽고 성지순례도 하고 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기위해 찾았던 평신도 신학교육원에서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이들의 삶 자체가 벌써 나와 우리의 삶에 향기가 되어 스며들어 있다. 한 분 한 분의 삶을 엿보았을 때 모두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들이 가야할 길을 알았고 그 결과 소중한 열매를 맺었던 것 같다. 만약 그들이 세속적인 이유로 그들이 가야할 길을 외면했다면 이 숨통 막히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이 어떻게 쉼 없이 전해 질 수 있겠는가.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독후감 공모에 응모할까 말까를 망설이는 동안 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이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왔고, 3년 전에 큰 두려움과 번민으로 맡게 된 봉사직의 임기가 올해 9월로 무사히 만료되고 세례 받은 지도 13년이 되는 이 즈음에 나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나만의 희년도 만들어 보자는 의미로 난생 처음 응모하게 되었다.

  한때는 그렇게 원망했던 하느님이 바로 나의 참포도나무임을, 그리고 온갖 폭풍과 가뭄, 눈발에도 그 나무에 머물러있도록 끊임없이 사랑을 주신 분임을 비로소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데 많이 서툴다. 아직까지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낮추어야 하는지에 대해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든든한 나무에 늘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불필요한 가지를 쳐 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만은 나 스스로 해야 할 일 인 것 같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를 뽑아 주신 분이 늘 내 곁에서 함께 하고 있기에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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