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보기서울평협 바로가기
> 알림&자료 > 공지사항
공지사항
제목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정신혜 베르디아나)
첨부 작성일 2018-11-08 조회 265

가작 : 정신혜 베르디아나(대구대교구, 복현성당)

 

무엇을 찾느냐? (요한 1,38)

 

 세례를 받은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 중 8년은 냉담하고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 지는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하느님의 자녀임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 어느 날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었다. 냉담을 풀고 난 후, 성당에서 활동 못한 지난날을 보상이라도 하듯 밀물처럼 여러 활동을 한꺼번에 하게 되었다. 본당 청년회, 청년회 간부, 청년성서모임 등등.. 처음 이런 저런 활동을 하게 됐을 때는 그저 재밌고 기뻤다. 신앙생활이 하루하루 새로웠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성당에서의 인간관계가 힘들어졌다. ‘저 사람만 아니면..’, ‘저 사람 정말 싫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더 낫겠지등 남을 깎아내리게 되고, 나의 힘든 일들이 다 사람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신앙에서는 한 결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나는 한 없이 미워하기만 하니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처음 냉담을 풀 때도 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성당을 찾았다. ‘성당에서 기도하다 보면 낫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아버지와 부딪힐 일이 더 많아지면서 감정적인 충돌도 잦아졌다. 그럴수록 내 마음도 더 힘들어졌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움이 커지니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닐까?’, ‘아버지인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사람을 용서하려고 가진 신앙 안에서 또 사람을 미워하다니..’ 하는 생각으로 내 자존감마저 낮아졌다.

 그러다 올해 여름에 간 청년성서모임 연수에서 미워하는 게 왜 사랑이 아니지? 왜 꼭 좋아야하고 챙겨주는 것만 사랑이지? 미워하는 것도 사랑이 바탕이고, 사랑의 형태야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뒤통수를 쳤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힘들어서 상담을 받았을 때도 상담사 선생님이 미워하는 게 아니라 사실 너무 사랑하고 있어서 힘든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이 말을 부정했다.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지?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나의 바깥에서만 사랑을 찾았다. 조건이 있는 사랑, 무언가를 받아야만 주는 사랑 말이다.

 <사방이 온통 행복인데>는 내가 살았던 이런 삶과는 반대다. 한 줄 요약하자면 모든 것에서 행복 찾기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는 끝없이 사소한 일, 사람 관계, 생각, 자연 등 모든 곳에서 행복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느님이 우리 일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도대체 하느님은 누구지?’ 라는 생각으로 힘들었다. 놀랍게도 하느님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한 명 한 명의 모습에 하느님 얼굴이 있었다. 힘들 때마다 내 손을 잡아준 사람들, 어두운 길을 지날 때 등불이 되어준 사람들, 우연히 다시 만난 대모님 등.. 이것이 내가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내 안의 하느님 체험이다.

 하느님은 늘 내 옆에 있는데, 내 안의 어둠이 너무 깊으면 옆에 있는 밝음을 못 본다고 하셨던 수녀님 말씀이 생각난다. 하느님은 누구를 찾느냐? (요한 18,4; 20,15)’는 말로 나를 꾸짖으신 것 같다. 옆에 있는 하느님, 옆에 있는 행복을 못 보고 멀리서 찾는 나를 보고 하느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하지만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신 게 아닐까 싶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해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려고 한 없이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있는 것 같다.

 마태오 5,1-12에서 예수님은 여기그리고 지금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힘든 내 마음, 환경, 상황 등을 참고 이겨내면 나중에 행복할 것이라는 미래의 행복이 아니다. 힘든 상황 안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 무언가 이겨내지 않아도 그냥 그 자체로 행복한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요즘말로 하면 얼마나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인가? 책에서도 이런 사소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평범한 행복을 선물해주시기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도,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사람 때문에 행복했던 적도 많았다. 사진 속 내 모습만 봐도 2년 전과 지금은 확연히 달라졌다. 무표정을 하고 있으면 무섭다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로 굳어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화사하게 웃고 많이 밝아졌다. 청년회에 들어간 지 일 년이 지난 후에 담당 신부님께서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정말 많이 밝아지고 표정도 다양해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원래 사람 앞에 나서는 것도 무서워하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려워하던 사람이었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정말 싫어했고 대학 때 발표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본당에서 전례, 간부 일을 위해 앞에 나서서 말을 하는 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같이 어울리지도 않고, 사람이 많은 곳은 일부러 피했다. 하지만 성당에서는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직장생활도, 현재 대학원 생활도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 하느님을 다시 알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 전의 삶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작고, 경험이나 활동의 범위도 더 좁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지켜야할 것도, 노력해야할 것도 없을 테니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팍팍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불평불만 하는 삶일 것 같다. 그래서 그 안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영영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나의 바로 옆에 있는 행복을 누리기도, 사랑하기도 바쁜 하루하루다. 나는 먼 길을 돌고 돌아 답을 찾았다. 내가 찾고자 하는 무언가는 그것이 행복이든 사랑이든 예수님이든, 바로 내 안에 있다. 내 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있는 힘껏 후회 없이 사랑하는 삶을 청해본다. 오늘도 잠들기 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다.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참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성 프란치스코 기도 ).

 

이전글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좌영희 아델라)
다음글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송채호 안드레아)
      


TOP 위로가기
Copyright ©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All Rights Reserved.

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명동2가 1) 가톨릭회관 510호
전화 : 02) 777-2013 / 팩스 : 02) 778-7427